본문 바로가기
Review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by 밤거미 2021. 2. 16.

현실적인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사는 삶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를 싫어한다. 내가 영화한테 바라는 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현실로부터 잠깐 벗어나 생각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니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내 기준에서는 꽤나 현실적인 영화였다. 그런데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비판적이고 배배 꼬인 시각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주 전형적인 일본 영화의 영상미군, 기댈 곳 하나 없는 조제가 남자에게 가지 말라고 한 것이 과연 사랑일까 그냥 생존을 하기 위한 어떤 흐름에 몸을 맡긴 것이 아닌가, 남자는 불행한 여자를 지켜줘야 한다는 전형적인 마초의 신의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그러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는 배배꼬인 내 생각이 풀렸다. 그래, 어떤 연애가 순수히 사랑만을 가지고 하겠는가, 당연히 복잡한 감정을 기반으로 사람은 행동하는데. 그런 것들이 뭐가 중요한가, 그럴 수도 있지. 이 연애로 조제는 성장했고 그것으로써 됐다.

어디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냐면 조제가 남자로 인해 처음보는 모든 것들에 설레어할 때부터이다. 이때부터 이 이야기는 나한테 더 이상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사랑도 외로움도 없는 아주 단조롭고 평화로운 세계에 살던 조제가 어떤 계기로 인해 사랑도, 외로움도 알게 되는 성장드라마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도, 터널 속 빛에 의해 손에 지는 그림자조차도, 처음 보는 바다도, 바닷속이 테마인 웃긴 홀로그램이 있는 모텔도, 그것들 자체로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했지만 그것들을 보고 신기해하는 조제를 보고 같이 설렐 수 있었다. 그리고 바다 옆을 걷는 두 사람과 빛나는 바다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조제가 태어나서 처음 봤을 바다의 아름다움에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모텔에서 조제가 남자에게 하는말,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대표할만한 대사였다. 내가 했던 연애를 되짚어 보게도 하는 대사였다. 나에게 첫 연애도 나에게 비슷한 경험이었다. 조제처럼 내가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산건 아니지만 내 비좁은 세계를 확장시켜주는 경험이었다. 느낀 적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줬으며, 연애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때 즈음 깨달았다. 아, 이 영화는 모든 연애를 담고 있구나. 이 영화의 모든 설정은 이것을 위함이구나.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남자의 시각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조제가 느끼는 감정들이 하나하나 모래 속 자갈처럼 나에게 박혀서 조금이라도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건 조재가 남자와의 조우 전에는, 그래 조제 말대로,  깊은 심해 같은 세계에 있었다는 것을 더욱 부각한다. 내가 봤을 때 영화에서 조제의 장애는 이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렇게 보니 참 영화다운 설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 현실적은 영화는 아니었을 지도,,..

둘이 세상이 뒤집어질만한 세기의 로맨스가 아니라 1년하고도 몇 개월을 같이 살다가 헤어져서 좋았다. 이 영화가 로맨스보다는 조제의 성장드라마였다는 것이 확실시되는 면이었다.

 

조제야, 잘지내지..?

'Re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빈폴 (Bean Pole)  (0) 2021.02.28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0) 2021.02.17
델마 (Thelma)  (0) 2021.02.13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0) 2021.02.02
장화, 홍련  (0) 202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