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생각이 많은 소녀의 커밍아웃기 인것 같기도 하고... 히어로물에서의 히어로가 자신의 능력을 깨닫는 초입의 스토리같기도 했다. 믿고 의지했던 아빠의 배신을 비로소 인정하고 제거했을 때,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거의 끝까지 느꼈던 감정은 '그럴만 하다'였다. 델마가 의도치 않게 동생을 죽였을 때 부모가 공포를 느끼고 위험해 보이는 델마를 제어하려고 한 것은 그렇게 개연성이 없는 행동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딸에 대한 사랑보다 마치 신처럼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어떤 존재에 대한 공포심이 더 컸고, 그 존재가 할 행동이 끼칠 영향에 망가질 세상이 더 두려웠을 수도 있지...잘 모르겠다.
델마가 원했던 삶은 그리 대단하고 어려워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를 사귀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삶이었던 것 같은데 부모의 공포로 삶이 지나친 제어에 갇히면서 사고를 친다. 역설적으로 델마가 사고를 치지 않게 하기 위해 엄한 기독교 교리를 델마에게 주입했을 것 같은데 그 엄한 기독교 교리 때문에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게 된다는 걸 알게된 델마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다가 빵 터져 사진의 감정 자체를 부정하게 되고, 6살 때 동생에게 그랬듯 소녀도 사라지게 만든다.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부모님이 델마에게 끼치는 영향이 지대했던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델마는 자신의 발작증세 때문에 병원에가서 검사를 받으면서 부모가 할머니에 대해 자신에게 숨겼음을 알게 되고, 할머니가 있는 요양원에 찾아가면서 할머니 또한 자신과 똑같고, 독한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해 제대로된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음을 알게 된다.
그래도 델마는 부모를 찾아가 도움을 받는 것을 자처하고, 의사인 아버지가 주는 독한 진정제 비슷한 약을 복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뭐때문이지..? 그래 깨진 컵을 치우는 자신을 보는 어머니의 눈빛을 보고 뭔가 깨달았다. 자신을 딸로서가 아닌 무서운 어떤 존재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델마는 꿈결에 아버지를 사라지게 만든다. 잠에서 깬 델마는 아버지를 사라지게 만든 것을 알게되고 사라지게 만든 장소인 강으로 가서 헤엄을 치고 모종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한 것이지 않을까?
지금 매우 머리를 쥐어짜서 쓰고 있는 기분인데 이 영화가 그렇게 재미있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거부감이 들어서 인가? 어떤 면에서는 나와 닮아 있어서.. 내가 초능력은 없지만 나를 지나치게 제어하려고 했던 부모를 가진 것에는 틀림이 없으니. 델마는 아빠를 죽이고 엄마의 다리를 고침으로써 자유를 주고 본인의 삶을 찾았지만, 나는 돈을 열심히 벌어서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점이 매우 다르지만ㅋㅋ 델마는 좋겠다.. 원하는 대로 실현시킬 수 있어서.
할머니로부터 알 수 있듯이 초능력이 모계유전이라는 점,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델마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깨닫고 또 그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상징하는 바가 명확하다. 전체적으로 영상미도 예뻤고, 특히 우유가 담긴 컵에 코피를 쏟은 후 컵을 놓쳐 깨트렸을 때, 아주 전형적인 유럽 영화의 하얀색-붉은피의 영상미가 느껴져서 좋았다.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아주 날카로웠다. 맞다 까마귀... 까마귀는 아마 델마를 원하는 삶으로부터 막고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강에서 헤엄져 나온 델마가 까마귀를 토한다. 좀더 자세히 봤다면 더 많은 메타포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이렇게 전형적이고 아름다운 페미니즘 영화는 흔치 않기에... 내가 좀더 사정이 나아져서 정신적으로 더 건강해지면 다시 보고 싶은 영화이다. 아깝다. 고작 지금 느끼는게 델마가 부럽다ㅋㅋㅋㅋㅋㅋ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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