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보고 나선 입안이 썼다. 나는 이제 상당한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 인생을 투영해서 보게 되어버렸다. 10년 전에 봤더라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영화적인 스토리가 좋다고 했지만 내 기준에서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아지면 나도 모르게 한 발짝 뒤에서 오만하게 쳐다보게 되고, 마지막의 포레스트와 제니, 작은 포레스트의 그림 같은 뒷모습을 보면서는 결국 궁극의 행복은 정상적인 가족이란 말이지? 하면서 감독을 비웃게 되기도 했다.
그냥 모든게 슬프다. 책을 많이 읽지 말걸. 드라마 영화를 많이 보지 말걸. 좋다고 모든 걸 급하게 소비해버리지 말걸. 천천히 꼭꼭 씹어서 음미할걸 그랬다. 너무 많은 감정을 급하고 빠르게 휙휙 지나가 버려서 이제는 어떤 것도 그전처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없는 기분이다.
그냥 영화를 보면서 이런식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에 대해 참 실망감이 들었다.
포레스트 검프는 아이큐가 75인 소위 말하는 '지능이 조금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와 대비되게 육체적인 능력은 뛰어나서 축구, 군대, 테니스 등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거의 이 정도면 손대는 곳마다 대박을 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포레스트가 사랑한 사람들은 계속 떠나가기만 한다. 평생의 사랑 제니는 방랑벽이 있는지 계속 포레스트를 떠나고, 가장 친한 친구 버마는 전장에서 죽고, 어머니는 암에 걸려 포레스트를 떠난다.
그래도 나는 부러웠다. 포레스트는 하고싶을 때 하고 싶은 것을 했고, 가장 친한 친구, 사랑하는 연인, 최고의 엄마를 가졌었다. 그들이 포레스트를 떠났을지언정, 사람은 태어난 이상 죽는걸, 나는 어떤 것도 가지지 못했으니까. 포레스트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 나는 생각의 갈래가 다섯 가지는 되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등교하면서 발이 도보의 경계를 밟는 걸 보면서 어쩌면 인생은 이런 거 비슷한 게 아닐까 생각하던 사람이다. 영화 내내 포레스트를 보면서 나와 비교하고, 질투했던 것 같다. 사실은 그동안 본 모든 영화와 책, 드라마 속 인물들을 나는 조금씩 질투한다. 그들의 서사는 완성되어 있으니까. 나의 서사는 절대 완성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인생은 인생이니까. 그런데 나는 인생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만약 책이라면, 영화의 스토리라면, 하고 한 발짝 물러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내 인생은 정말 재미없는 것이었다. 그런 주제에 모든 아픔은 정말 선명해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예민해지고 방어막만 두꺼워지는 것 같다.
포레스트가 문득문득 바라본 하늘이 아름다워서 좋았듯이, 오늘 연구실에서 나와서 올려다본 하늘도 참 아름다웠다. 영화에서 보여준 하늘보다 더. 아픔은 긴데, 행복과 감동은 너무 짧다. 계속 살아나가야 할 의지는 계속 꺾이고, 삶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제니가 날고싶다면서 옥상의 난간에 막을 올렸을 때, 나도 같이 아찔했다. 아직 죽을 땐 아닌가 보다. 내 앞에 주어지는 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인생의 의의라면, 내 앞에 주어지는 것들 중 가장 궁금한 게 죽음이다.
포레스트가 제니의 무덤앞에서 인생에 운명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 모두 우연하게 바람에 떠다니는 존재들인 걸까? 하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런 게 어디 있겠어. 우울한 인간들이 쓸데없이 의미 부여하는 거지. 우리는 모두 그저 우주의 먼지일 뿐이다. 의미 같은 게 어디 있겠어.
포레스트의 주변인물들은 포레스트의 단순한 시각으로 봐서 더욱 강렬하고 살아 움직인다. 여자, 흑인, 장애인. 사회적 약자들을 골고루 등장시키고 이들을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백인 남자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린다.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다만 영상미는 아름다웠지만 내 취향이 아니었고 백인 남자로 태어나 모든 걸 가져본 포레스트가 부러웠다. 아이고 추잡해
94년도에 만든 영화에 담긴 사회문제들이 3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계속 주요 사회문제인게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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