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나는 방황하고 있다. 단어가 이렇게 밖에 안써지나 싶긴 한데 이게 내 최선이다.
온갖 것에 대한 중독으로 점철되어 있는 삶 답게 오늘도 스마트폰에 중독이 되어 이것저것을 들쑤셔보다 결국 볼게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내 인생에 대한 현타가 밀려왔다. 캐롤라인 냅의 욕구들을 읽고 중독에 강한 내가 되자고 다짐한게 바로 얼마전인데, 나는 어쩔수 없는 사람인가 싶었다. 그 때 시선이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닿았고, 이 책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책이니까 지금 허하고 방황하는 내 마음의 길잡이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 책을 들췄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나니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과 삶의 방향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올바른 삶의 방향은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고, 여기서 쾌락은 우리가 흔히 쾌락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방탕한 이미지보단 행복을 느끼는 상태에 가깝다. 쾌락은 욕구들이 채워질 때 느껴지는 것이다. 저자는 이 욕구들이 채워질 때 가장 큰 쾌락을 느끼려면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또한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상태는 불행이 없는 상태라고도.
그래서 그래, 불행이 없는 상태를 추구해 보자. 작은것에도 만족해 보자. 너무 큰 쾌락들, 도파민덩어리들을 맞이하는 횟수를 줄여보자하고 다짐했더랬다. 그래서 음악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이것저것 들춰보다 생의 한가운데로 정착했고, 나는 니나의 삶에 대한 태도와 감정에서 나와 비슷한점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랜만에 공감을 느껴봤기 때문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니나라는 캐릭터에 빠져 내가 니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어떤 모종의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니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어디에 매여있기보다는 차라리 이별을 택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에도 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자아 또한 그렇다. 매일 치열하게 사고하고 우수에 빠지며 고민하면서 살아간다. 얼핏보면 니나는 끊임없이 길을 잃고 헤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가까이서 봤을 때 보이는 니나의 생명력의 진동일 뿐이다. 멀리서 보면 니나는 누구보다 생의 한가운데서 생을 받아들이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쯤에서 나는 니나가 느끼는 인생에 대한 막막함과 어려움, 불안에 대해 깊이 공감하면서도 고민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방금 인생의 자극을 줄여서 정적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는데, 니나를 보니 고뇌하면서 살아가는 것도 너무 간지나는데? 하지만 행복하진 않겠지? 니나의 언니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법을 알았다. 원하는 것이 없으니 주어지지 않아 불행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니나는 끊임없이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들이받았다. 불의를 보고 참지 않았으며, 부조리한 사회에 반항했다.
내가 니나의 언니처럼 살며 만족할 수 있을까? 언젠가 내가 했던 고민의 결과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 삶의 안온함과 내 손톱만큼 남은, 그러나 끊임없이 나를 쪼고 있는 윤리적 책임감중 나는 어떤 것에 무게를 둬야 할까?
그러나 나는 안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말하는 올바른 삶의 방향은 니나의 언니의 삶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는 삶의 안온하지 않은 부분에서도 자기 만족을 하고, 불행, 즉 죄책감, 양심적인 괴로움들을 제거하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즐거운 삶이라는 것을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안온한 삶이라는 건 너무 유혹적인 것인데.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고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 내 최종 꿈이었는데.
내 양심이, 부조리한 사회가 자꾸 내 꿈으로 향하려는 내 발걸음을 막는다. 나 4층짜리 호화로운 빌라에서 친구들이랑 놀면서 걱정없이 여유롭게 살고싶은데.. 내가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나대는 순간 이런 꿈들은 멀어지겠지? 죽을 때까지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내린 결정들에 대해 후회할지도 모른다.
나는 정말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