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질문들

밤거미 2021. 1. 18. 22:12

감정이 넘쳐서 쓰는 글. 무슨 감정인지 몰라서 분석해보려고 이 글을 쓴다.

 

우울한 것 같기도 하다. 난생처음 연말정산을 해야 하는데 하기 싫고.. 이런 거 하나 뚝딱 못하는 내가 싫어서.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건 연구도 음악도 그림도 아니고 그저 사람들한테 인정받는 것인 것 같아서. 그토록 내가 부정하고 싶던 나의 단면이 더 이상은 무시 못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은 어찌 돼도 상관없는 거 아닐까. 그냥 사람들이 날 좋아해 주고 부러워하면 좋은 게 아닐까. 나라는 인간은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고 깔보던 다른 인간들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좋지도 싫지도 않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있는 공간에 몇 개월 동안 몸담고 있다 보니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독히 신경 쓰는 타입이구나. 나는 남에게 보이고 싶은 이미지가 있고 그 이미지대로 보이지 않으면 전전긍긍하고 남의 말 행동 하나하나에 이렇게 예민하구나를 깨닫고 있다. 정말 노간지가 아닌가. 나는 무던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 따위는 무시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성격으로 태어나진 못했나 보다.

 

짜증이 난 것같기도 하다. 이 집에. 엄마와 아빠한테. 숨소리 만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아빠한테. 내가 끔찍이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같이 화목한 가정 놀이를 하고 싶어 하는 엄마한테. 내가 엄마 아빠의 돈을 쓰고 그들의 집에서 사는 한 내가 감수해야 하는 거겠지? 그럼 독립은 언제 어떻게 하지..? 난 내방이 너무 좋은데. 그런데 밤마다 들려오는 아빠의 소리가 너무나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나는 정말. 아빠가 싫다. 어쩌면 동족 혐오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빠랑 닮았음을 느꼈을 때. 화날 때마다 뭔가를 부숴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 사과를 하지 않고 넘어가고 싶을 때. 목소리 큰 걸로 이기려 들 때. 답답한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키울 때. 절때 자식은 키우지 말아야지. 나 같은 감정은 느끼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무서운 것 같기도 하다. 맨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에 던져진 기분이다. 연말정산이 시작이겠지..? 사회생활도 해야 할거고 발표도 해야 할 거고 어려운 보고서 작성도 해야 할 거고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어도 강제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내 기준을 가늠해보고 그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직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멍청하고 나태해서 배우지도, 지쳤다고 관심을 가지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쳐서 더 이상 보기 힘들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분석하지 않는다. 이렇게 명확하지 않은 내 기준을 가늠해보다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그래서 영영 후회하게 되면? 그런 날이 올 까 봐 너무 두렵다. 

 

선배의 과제를 베껴서 0점을 받은 적이 있다. 선배한테 사과도 했고 0점을 받았으니 상황은 일단락 된 셈인데,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 이거 때문이다. 오전 내내 이 일에 신경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지. 어떡하지? 어떡하긴, 앞으로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지금 느끼는 감정은 받아야 할 벌이다. 벌을 받자.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아직도 인간이 왜 존엄한지 의문이다. 인간만큼 이기적인 존재가 어디 있다고. 근데 왜 나는 이기적인걸 싫어할까? 세상에 이기적이지 않은 존재가 어딨다고. 다들 주어진 자원으로 최대한으로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왜 무의식적으로 사회에 공헌하고 싶어 할까. 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질까. 나의 일이니까. 내가 의문을 가져왔던 일에 답을 줬으니까.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적 운동을 해야 하나? 시위흘 나가야 하나? 그러기엔 용기아 없었다. 그러데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있는 지금이라고 편한 건 아니다. 남초인 직장에서는 끊임없이 내 신경을 거스른다. 세미투블럭 머리를 하고 있는데 맘에 들지 않는다. 칼 단발을 해보고 싶다. 귀찮기도 하다. 그런데 내 몸을 꾸미는 건 가부장제에 굴복하는 건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걸까?

 

내가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이 인생에.

나는 주어진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밑빠진 독 같은 만족감을 채울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