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는 읽다가 어떤 장면을 참지 못하고 그만뒀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고사하고 있었으나, 리커버 표지가 너무 취향저격이라 겸사겸사 사서 오늘 1회독했다. 2회독을 할지는,, 모르겠고 우선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일체 보지않은 내 해석100프로의 감상을 남긴다.
소비당하는 대상의 고통에 완벽히 동기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바로 영혜의 상태이다. 영혜는 어느날부터 도륙당하는 동물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꿈을 꾼다. 붉은 고깃덩어리들, 그 사이로 행복해보이는 사람들의 풍경에서 영혜는 사람들이 아니라 도륙당한 고깃덩어리의 심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영혜는 고기를 먹지 못하게 된다. 이 책을 총 3장으로 이뤄져 있다. 첫장은 영혜를 철저히 대상화하는 남편의 시점, 2장은 영혜를 욕망하는 형부의 시점, 3장은 영혜에게 공감하는 언니의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혜의 남편은 영혜를 적당한 여자, 밥해주고 섹스나 해주면 그만인 여자로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철저히 영혜를 대상화한다. 이런 관계구도에서 우리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볼 수 있다. 1장 내내 남편은 여러 방안을 실행하면서 영혜가 이전의 상태로 돌아와주길 바랄뿐, 영혜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영혜를 단 한톨만큼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옆에서 쓸모를 다해야하는 사물이나 마찬가지로 보는 남편의 시선에서 영혜는 이질적이고, 이상하다. 동시에, 한국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으면 단지 고기를 먹지않는다는 이유로(=고기반찬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브래지어가 불편해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에서 더워서 옷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고, 강제로 고기를 주입당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 소름돋았던 건 나도 남편의 시선에서 같이 따라가니 영혜가 예의를 차려야 하는 자리에 브래지어를 입지 않고 참여했을 때 나도 모르게 이건 좀..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사회에서 채식주의자가 갖는 위상이란 이런 거겠지.. 영혜는 1장 내내 단 한번도 존중받지 못한다. 주변의 요구에 맞춰주어야 한다는 강요만이 강제된다. 결국 영혜는 꿈에서와 같이 "정상가족"앞에서 피칠갑을 하고있는 모습을 재현하게 된다.
2장은.. 친구가 보다가 힘들어서 그만뒀다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는 장이다. 왜 그런지는 십분 이해한다. 윤리적으로 보기 힘든 장면이 존재한다. 영혜의 언니의 남편인 2장의 화자(이름이 언급되던가?)는 영상으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이다. 약 2년간 작품을 만들지 못했지만, 아내로부터 처제의 엉덩이에 커다란 몽고반점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듣고 영혜를 향한 이유모를 욕망을 품게 된다. 왜 몽고반점인가? 초록색이 살짝 비치는 그 색깔때문이가?싶긴 한데 그냥 처제의 엉덩이를 연상하게된 매개체에 불과하다는게 내 의견이다. 아무튼 2장은 알수없는 존재인 영혜를 향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시선에서 쓰여진 만큼, 영혜를 보는 시선이 아주 적나라해서 읽기 힘들었다는 친구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가 갔다. 결국 형부는 처제의 나신에 꽃을 그려 영상으로 남기고, 마침내는 자신의 욕망도 실현한다. 영혜가 꽃이 그려진 동안에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는 소비하는 인간의 입장이 아닌 소비당하는 식물, 동물, 혹은 사물이 되어 (by 좆같은 형부...하) 있는 동안에는 영혜의 죄책감이 덜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3장은 드디어 영혜에게 공감하는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영혜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식물이 되려한다. 그 어떤 것도 취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혜는 남편이 사고를 치기 전부터 내면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견뎌냈을 뿐이었던 자신의 삶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엉망인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자신의 무엇이라면 더. 그래도 인정하고 나면 가장 어려운 일중 하나가 지나갔기 때문에 인혜는 이해하기 힘든 안정감을 느낀다. 끝없이 허무한 와중에서 인혜는 아들 덕에 살게 된다. 그 어느날 영혜와 나무에 대한 꿈을 꾸고나서 인생을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다오지만 격국 인혜는 살기를 선택한다. 반면 영혜는 아니다. 영혜는 먹는것을 포기하고 위출혈로 구급차에 실려간다. 인혜는 처절한 삶에 남아 발버둥치는 자신에 비해 생과의 끈을 쉽게 놔버린 영혜에게 배신감같은 감정을 느낀다.
왜 죽으면 안돼? 하는 질문에 인혜가 대답못했듯이, 나도 대답할 수 없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착취의 대상들이 모두 고통의 존재일 뿐이라면, 어쩌면 살지 않는 것이 덜 고통스러운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채식주의자가 겪는 고통을 극대화해놓은 것 같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착취당하는 수많은 동물들에 대한 외면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표현이거나, 주변의 착취에 대한 저항의 활동으로써의 채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고통을 다루고 있는 내용답게 읽기 쉽지만은 않았으나, 한강작가의 문체가 워낙 술술 읽히는 느낌이라 어렵지 않게 끝까지 읽었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장면에 대한 시적 묘사들, 나무와 자연에 대한 서늘한 초록의 묘사, 햇빛을 묘사하는 문장들에 감탄하면서 읽었다. 무서운 자연에 대한 인혜의 시선을 보면서, 최승자 시인의 무서운 초록을 떠올리기도 했다.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고, 주인공은 이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이 책에서 고통의 가장큰 주제는 죄책감인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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